<< 잡스가 말하는 청소부와 VP의 차이 | Home | 설득력이 있는 디자인 >>

제약성을 가진 미디어 콘텐츠들이 왜 뜨는가?

Twitter, Vine, Dribbble, Snapchat에서 열광하면서 왜 콘텐츠에 제약성을 가진 서비스들이 뜨는지에 대해서 재밌게 분석해 놓은 아티클("Constrained media: How disappearing photos, 6 second videos, and 140 characters are conquering the world")이 있어 소개합니다.
앞으로 비즈니스에 대해 제약성에 대해서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위 아티클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약성을 가진 미디어. 이것은 사용자에게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의도적인 제약성을 가진 - Twitter의 140자는 혁신적인 제품 카테고리의 가장 유명한 예일 것이다.

현재의 시대에 이러한 앱들은 많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성공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
왜 콘텐츠 생산에 제약성을 강요하는데, 오히려 제품을 더 성공한 것인가?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닌가? 이러한 제품에 제한을 없애면 더 좋아지진 않을까? 또한, 모든 제약이 정상적으로 작동될까?, 너무 독단적인 것일까?

나는 제약성이 제품을 작동시키는데 빠뜨릴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주장할 것이다. 제약성을 가진 미디어 제품의 높은 참여는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1%의 장벽을 깰수 있는 능력에 기초한다. 이 1% 룰은 Wikipedia와 YouTube와 같은 사용자 생성 콘텐츠 서비스의 유명한 룰이며, 사용자의 1%가 콘텐츠를 만들고, 9%가 편집 및 큐레이션을 하고, 90%가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사용자의 단지 1%만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안좋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 말해보자.

마찰이 없는 콘텐츠 생산을

보통은 제약성을 가진 미디어 앱이 콘텐츠 제작을 쉽게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구나 140자로 타이핑할 수 있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버튼을 눌러 6초 루프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기존의 블로그와 같은 크고 빈 텍스트 영역과 Photoshop과 같은 정교한 사진 도구와 비교해 봄으로써, 이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창조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제약성이 제품 UI의 심플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다. 이러한 제약성은 제품을 보다 더 적은 수의 사용 사례를 지원하게 하고, 장난감처럼 사용하기 쉽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종 Snapchat이나 Vine과 같이, 하나의 버튼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수행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단지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특정 한계에 도달했을 때 모든것을 종료한다 - 콘텐츠를 편집하거나 재배열 할 걱정은 없게 된다.

컨텐츠와 제품 UI, 둘 모두의 심플함이 모든 경험에 대해 더 방향성을 가지고 더 높은 전환(콘텐츠 생산으로)을 하게 하는 것이다.

퍼블리싱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콘텐츠 생산하는 것을 구축했다면 다음 단계는 컨텍스트를 퍼블리싱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높은 수준의 참여를 촉진한다. 1% 룰은 지면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제품의 콘텍스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메일, IM, Skype,텍스트 콘텐츠 작성의 비율은 어떨까? 그것은 확실히 1%보다 높은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100%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모든 참가자가 다른 사람을 향(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모든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Twitter에서 @멘션이 있고, Dribbble에는 리바운드가 있고 Snapchat는 커뮤니케이션이 전부다. 미디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향할 수 있어 서로 서로 얘기를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콘텍스트가 있기 때문에 이것은 또한 사람들의 참여를 촉구한다. 이것이 건강한 유저끼리의 참여를 기반으로 이메일 알림을 유도한다. 그리고 이것이 빈번한 참가, 바이럴 마케팅, 기타 각종 좋은 것들을 촉진시킨다.

생산보다는 응답을 쉽게

처음부터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 낯선 사람에게 자기 소개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응답을 하는 것은 쉽다. 만약 누군가가 Snapchat에서 우수꽝스러운 얼굴의 사진을 찍으면 자연적인 반응은 우수꽝스러운 얼굴을 대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그 사진이 자신에게 특별하게 보내졌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대답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느낄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런 제약성을 증가하는 것은 - 당신은 자신이 누구에게 회신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제약성과 당신에게 발송된 콘텐츠의 종류에 대한 제약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제약성은 응답하려는 무언가를 찾아내기를 더 쉽게 해준다는 점이다.

노력의 분산을 줄임으로써 보통의 콘텐츠를 쉽게 만들게.

어느 누구도 과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너무 과시가 많은 플랫폼은 사람들이 더 숙련되고 더 시간이 많은 사람들과 경쟁 싶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거라는 우스꽝스러운 사회 규범을 만들어 낸다.

대신에, 제한이 있는 콘텐츠 생산은 기술의 낮은 사용자와 숙련된 사용자의 결과물에 있어서 상충되는 점을 줄여줘, 결국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의 가장 좋은 비유는 발야구와 프로 야구의 차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전자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수준을 낮추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더 참여시킬 수 있는 것이다. Dribbble은 자신이 지금 일하고 있는 작품을 400×300의 "샷"에 포스팅하는 것이 습관의 일부가 되어 있는 디자이너 커뮤니티이다. - 즉, 더 자주, 참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껏해야 일년에 한번 업데이트하는 포트폴리오 사이트와 비교해 봐라.

콘텐츠의 발견 가능성도 중요한 요소다. 만약 당신이 더 노력을 요하는 콘텐츠나 높은 기술의 콘텐츠를 찾는 것이 쉽다면 비록 콘텐츠 소비 경험이 개선될지도 모르지만, 컨텐츠 제작을 방해하는 리더보드 같은 것을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트레이드오프다. Snapchat의 개인적이거나 임시 콘텐츠는 쓰레기 셀카 사진을 게시해도 안전한 유일한 장소임을 의미한다.

추가 참여를 통해 무엇을 하는가?

위의 모든 것은 더욱 빈번한게, 더 포괄적인 컨텐츠 제작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콘텐츠 견인의 원동력이 된다. 더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바이럴 루프를 통해 더 많은 사용자에게 체험의 기회 제공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리텐션의 동기가 되는 자연스러운 사용자 간의 알림을 확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Snapchat의 경우, 당신이 응답한 후에 사진의 수혜자를 추가로 몇몇 포함하는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쉽게 된다. 혹은, 당신이 6초 동영상을 만든 후 그것을 다른 소셜 네트워크에서 공유하는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쉽다.

그래서 다음번엔 당신이 새로운 소셜 제품을 디자인 할 때 제약 조건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해봐라. 그러나 이것은 독재적인 제약성은 아니다. 이것은 콘텐츠 제작을 더 쉽게, 더 커뮤니케이션 지향으로,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사회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1%룰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Tags : ,



Add a comment Send a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