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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혁신과 비혁신의 차이

며칠 전에 Re/code를 보다가 기업 문화에 도움이 되는 좋은 아티클 같아 킵해 놓고 았다가 주말에 짬내어 번역해 봤습니다. 제목은 "Can-Do vs. Can’t-Do Culture"입니다.

혁신은 딜레마라는 말이 딱 들어맞죠? 물론 혁신이라는 본질에 원죄(어렵다는)가 있기도 허지만, 기업이 커가면 커 갈수록 발목을 잡게 되는게 바로 혁신이죠. 이것 때문에 기울어간 회사들도 많이 있기도 하죠? 스스로 혁신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좋은 인사이트를 통해 생각의 파이를 키워가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신은 몸과 마음에 창조했고, 영혼을 채웠다. 우리가 증오를 가졌을 땐 이미 마음은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태도에서 나타난다.
- Rick Ross, “Hold On”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맞추고, 비합리적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도록 고집한다. 따라서 발전은 비합리적인 사람에 달려 있다.
- George Bernard Shaw

최근에, 신생 기술 기업의 단점들을 다루는 기사나, 코멘트, 그리고 트윗을 쓰는 행위가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문제가 일어난 스타트업, 성공한 기업가, 혹은 회사의 아이디어를 헐뜯는 트윗들을 보지 않는 날이 없다. 현재의 희망과 호기심 있는 스타트업 문화를 독선의 우월감으로 보이게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가 왜 일어날까? 왜 목소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기업의 잘못된 점보다 좋은 점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

기술이란 용어는 "일을 하는 더 나은 방법"을 의미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실행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정보를 저장하는 좋은 방법이나, 유통을 개선하는 방법, 혹은 친구를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습관화된 인간의 경험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어떤 점에서 무언가를 개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다. 성서 시대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똑똑하게 생각할만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심리학의 관점에서 발명이라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무한정 의심을 해야한다. 기술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불가능"을 상상하기 위하여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다.

사람들은 벤처 캐피탈 리스트인 나에게, 작은 기업은 아주 쉽게 혁신을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대기업들은 혁신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종종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일반적으로 상대방을 상당히 놀라게 한다. 대기업은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계층의 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혁신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한명의 우수한 직원이 아이디어의 단점을 지적하면(때론 과시하거나, 혹은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디어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로 인해, 의욕이 없는 문화(Can't Do Culture)가 태어난다.

혁신이 어려운 점은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그 당시에는 나쁜 아이디어로 보여진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혁신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아마존이나 구글 등의 창조적인 대기업은 혁신에 의해 경영되는 경향이 있다. 래리 페이지는 일방적으로 나쁘게 보이는 좋은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할수 있다라는 의욕적인 문화(Can-Do Culture)를 만들어낸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기술 스타트업 산업계를 퇴보한, "의욕이 없는 문화"를 가진 하나의 대기업으로 바꾸려하고 있다. 나는 이 비극적인 추세를 반전하게 하기 위해, 또한, 이 도전에 맞서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기술을 무시하는 수사적 표현들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때때로, 기업이나 발명이 유용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부정적 비판이 때론 유효할 수 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업이나 발명이 유용한 경우에도 부정적 비판이 종종 대국적 관점을 흐트리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아래의 두가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을 돕고자 한다. :

컴퓨터

1837년 Charles Babbage는 "분석 엔진"이라는 세계 최초의 범용 컴퓨터를 만들려고 했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튜링 컴퓨터라고 불리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Babbage가 만들려고 했던 컴퓨터에 충분한 지원이 투입되었더라면, 이 머신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컴퓨터가 계산 속도는 좀 더 느리고, 좀 더 큰 공간(엄청 느리고 엄청 컸을지도)을 차지했을지도 모르지만, Babbage가 설계한 것은 오늘날의 컴퓨터와 비슷한 계산 용량을 자랑했다.

Babbage는 작동하는 버전의 컴퓨터는 말들지 못했지만, 1837년에는 나무를 사용해 증기를 통해 동력을 얻도록 설계해 컴퓨터를 만드는 노력은 매우 놀랄정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결국, 1842년 영국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George Biddel Airy가 분석 엔진은 "쓸모 없는"이라고 하며, Babbage의 프로젝트를 포기하도록 영국 재무부에 진언했다. 영국 정부는 곧바로 이 프로젝트의 중단 결정을 내렸다. 회의 주의자들에 의해 좌절되고 잊혀진 뒤 1941년에 Babbage의 원래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왔다.

그 뒤 171년 후, Babbage의 비전이 옳았고, 컴퓨터에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Babbage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00년이나 빨리 태어난 것이 아니라, Babbage가 훌륭한 비전을 갖고 있었고 그 비전을 추구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Babbage는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자극을 주고 있다. 반면, George Biddel Airy는 선견지명이 없는 미치광이로 비춰지고 있다.

전화

전화를 발명한 Alexander Graham Bell은 발명품과 특허를 당시의 전신 공급자 선두업체인, 웨스턴 유니온에 $100,000에 팔기위해 제안했다. 하지만, 웨스턴 유니언은 내부 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 거래를 거절했다. 아래에 보고서 전문의 일부를 올린다. :
"전화기는 전신선을 통해 말 소리를 전송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소리는 너무 작고,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이 발견했다. 그리고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의 전선이 긴 경우 소리가 작아진다. 기술적으로도, 이 장치가 앞으로 몇 마일의 거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보낼 수 없다고 본다.

허바드와 벨은 "전화기"를 모든 도시에 설치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 아이디어는 멍청한 것이다. 게다가, 전신국에 사용료를 내고 명확하게 쓴 메시지를 미국 내 모든 도시에 보낼 수 있는데, 이 볼품없고 비현실적인 장치를 누가 사용하고 싶겠는가?

웨스턴 유니언의 전기는 지금까지 전보 기술을 크게 발전시켜 왔다. 우리는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외부 그룹에게서, 또한 실제적인 문제와도 너무 동떨어져 있어 채택할만한 이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G.G. Hubbard의 공상적인 예측은 매우 장및빛일지 모르지만, 무모한 상상을 기반으로 하며, 현 상황에 맞는 기술과 경제적 사실의 이해가 부족하다. 또한, 장난감만도 못한 장치의 명백한 단점을 무시하는 태도가 보인다.

이상의 사실을 감안하여, $100,000에 특허를 양도하라는 G.G. Hubbard의 제안은 분명히 비합리적이다. 이 장치는 웨스턴 유니온에게는 쓸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매는 추천 할 수 없다.

인터넷

오늘날의 우리 모두는 인터넷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의 현상이다. 1995년 천문학자 Clifford Stoll은 뉴스 위크에 "웹 세상이 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고 다음과 같은 비통해하는 분석을 기록했다. :
그래서, 거기엔 사이버 비즈니스가 존재한다. 인스턴트 카탈로그를 보고 쇼핑을 할 수 있다. - 단지 제품에 커서를 맞추고 클릭하면 거래가 이루어진다. 미래엔 네트워크를 통해 항공권을 주문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판매를 협상하게 될 것이다. 상점은 구식의 산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쇼핑몰은 어떻게 한달 동안 인터넷에서의 매출보다 많은 매출을 오후 반나절만에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에서 신뢰할 만한 송금​​ 수단이 있을지라도 - 지금 있을수 없지만, - 네트워크는 자본주의 필수 구성 요소인, 점원을 없애버린다.
영리한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을 미래에 할수 있는 잠재력이나, 지금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지 않고 당시의 할 수 없었던 점(결점)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반대론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

의욕이 없는 문화(Can’t-Do Culture)의 가장 피해자는 누구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을 좋아하는 혐오자들이다. 아이디어와 회사의 잘못된 점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들을 시도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질투 때문에 훌륭한 혁신가로부터 배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완고해 뛰어난 젊은 엔지니어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너무 냉소적이어서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위대한 일을 하도록 격려할 수도 없다. 결국, 후세에 조롱거리가 된다.

싫어하지 말고 만들어라.


Re: 혁신과 비혁신의 차이

 핑계되고,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워 하면서 한평생을 보내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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